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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계발 중독 루틴에 집착하다 번아웃 온 이야기

by lalab 2025. 6. 17.

자기계발은 삶을 더 낫게 만들기 위한 도구였을 뿐인데, 어느새 내 일상이 루틴에 휘둘리는 형식적인 전쟁터가 되어 있었다. 계획을 지키는 데 실패하면 무능감을 느끼고, 성공해도 왜인지 모르게 공허했다. 이 글은 자기계발이라는 ‘좋은 의도’가 어떻게 번아웃이라는 ‘나쁜 결과’로 이어졌는지, 그리고 그 안에서 내가 무엇을 놓쳤는지를 기록한 이야기다.

 

자기계발 중독 루틴에 집착하다 번아웃 온 이야기

 

완벽한 루틴을 향한 강박 해야 한다는 마음이 나를 조여올 때


처음엔 단순했다. 하루를 더 잘 쓰고 싶다는 마음에서 시작된 작은 루틴들. 새벽 기상, 아침 명상, 영어 공부, 운동, 독서... 어느새 내 하루는 알람에 쫓기듯 시간별로 쪼개졌고, ‘의미 있는 하루’를 살기 위한 스케줄표가 감옥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문제는 루틴이 무너지기 시작하면서였다. 한두 번 새벽에 못 일어나고, 운동을 건너뛴 날, 나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자책했고, 스스로를 무기력한 사람으로 단정지었다. 나태하다는 자기 판단이, 이러면 안 돼라는 자기 처벌로 이어졌고, 그 결과 루틴은 삶을 개선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내 자존감을 평가하는 잣대가 되어버렸다.

자기계발 콘텐츠 속 멘트들도 기름을 부었다. 성공한 사람은 새벽 5시에 일어난다는 말은 단순한 동기부여가 아니라, 내가 그 시간에 일어나지 못하면 실패한 인간처럼 느껴지게 했다.
루틴은 ‘나를 위한 것’이어야 했지만, 어느새 나는 루틴에 맞추기 위해 나 자신을 버리는 아이러니한 상태에 빠져 있었다.

루틴은 지속성보다 유연함이 더 중요하다는 걸, 그때는 몰랐다.
나는 계획을 지키기 위해 애쓰는 사람이 아니라, 계획을 어길까봐 항상 불안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번아웃의 징조 멈춰도 쉬는 게 아닌 상태

루틴을 집착적으로 지키려다 맞닥뜨린 번아웃은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찾아왔다.
몸이 피곤한데도 쉬지 못했고, 잠시 멈추면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는 불안이 들이닥쳤다. 어느 순간부터는 루틴을 지켜도 뿌듯함은커녕 무감각과 피로만 남았고, 하루를 잘 보냈다는 느낌이 사라졌다. 가장 이상했던 건, 실제로는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는데도 늘 압박감을 느꼈다는 것이다. 성취하지 않으면 불행해질 것 같았고, 루틴을 어기면 모든 걸 놓칠 것 같은 두려움이 생겼다.

이건 단순한 게으름이나 슬럼프가 아니었다. 이건 내가 스스로 설정한 높은 기준의 감옥에서 탈진해가는 과정이었다. 그러다 결국 무너졌다.
어느 날 아침, 알람이 울려도 일어날 수 없었고, 핸드폰을 들 힘도 없었다. 루틴이 깨어졌다는 사실에 속이 뒤틀렸고, 나 자신에게 실망했다. 하지만 그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 나는, 뭘 위해 살고 있지?” 그 질문이 내게 말해줬다. 이건 생산성이 아니라, 불안의 또 다른 얼굴이었다. 나는 더 나은 삶을 원했지만, 그 과정을 자기 처벌로 포장된 루틴으로 채우고 있었던 것이다.

 

나를 회복하는 루틴 유연한 리듬이 진짜 지속력이다

번아웃 이후, 나는 다시 루틴을 만들기로 했다.
하지만 이번엔 목표가 달랐다. 더 많이가 아니라 더 편안하게, 지키는 것보다 유지할 수 있는 것에 집중했다.
루틴의 핵심은 지속 가능성이고, 지속의 열쇠는 유연함이라는 사실을 체득한 뒤였다.

가장 먼저 바꾼 건 ‘모든 루틴을 매일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나는 주 단위로 계획을 세우고, 하루 정도는 루틴을 일부러 비우는 날을 만들었다. 그랬더니 이상하게도 그 하루의 여유가 나머지 6일을 훨씬 가볍게 만들어줬다.

또한, 루틴을 정량적 목표 대신 감정적 만족으로 바꿨다. 예를 들어, 독서 목표가 ‘30분 읽기’가 아닌, ‘읽고 나서 여운이 남는 느낌을 적어보기’로 바뀌었다. 운동은 ‘30분 유산소’가 아니라, ‘몸을 가볍게 느끼게 해주는 어떤 움직임’으로 정했다. 이렇게 바꾸자 루틴은 ‘해야 할 일’이 아닌 하고 싶은 일로 다가왔고, 나는 삶의 리듬을 나에게 맞게 다시 조율해나가기 시작했다.

루틴은 나를 통제하는 도구가 아니라, 나를 보살피는 방법이어야 한다. 그 이후로 나는 루틴에 의존하지 않고, 루틴과 함께 살아가는 방식을 조금씩 배워가고 있다.

 

루틴은 우리 삶을 더 나아지게 만들 수 있는 훌륭한 도구이지만, 그 도구가 나를 소진시키는 방향으로 쓰이고 있다면 멈춰야 한다. 자기계발은 삶을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삶을 돌보는 방식이어야 한다. 이제는 무엇을 하느냐보다 어떻게 살아가고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걸, 나를 통해 조금씩 배우고 있다.